평소 특별한 증상이 없는데도 몸이 무겁고 피곤한 느낌이 지속된다면, 보통은 ‘염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근 의학계에서는 바로 이런 저강도 염증(low-grade inflammation)이 만성 피로, 체중 증가, 심지어는 우울감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미세한 염증 반응이 당뇨병, 심혈관질환, 암, 치매와 같은 중증 질환의 배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염증’ 하면 보통 상처가 붓고 열이 나는 급성 염증을 떠올리지만, 오늘 이야기할 만성 염증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일상 속에서 서서히, 조용히 몸 안에 자리 잡아 세포와 장기를 손상시키고, 질병의 씨앗이 되는 이 염증은 ‘조용한 살인자’라 불릴 정도로 무서운 존재입니다.
저강도 염증이란 무엇인가?
우리 몸은 외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면역 시스템을 작동시킵니다. 상처나 바이러스 감염 시 백혈구가 활성화되어 붓고 열이 나는 반응을 급성 염증이라고 하며, 이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만성 염증은 위협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장기간 면역 반응이 지속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염증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지속적인 분비를 유발하고, 정상 세포에도 산화 스트레스와 손상을 가합니다. 피로감, 무기력, 소화불량, 체중 증가와 같은 애매한 증상들이 반복된다면 그 배경에 만성 염증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비만, 스트레스, 고당분 식습관, 수면 부족 등은 염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당뇨부터 치매까지… 염증이 유발하는 질환의 연쇄 반응
만성 염증은 다양한 질환의 공통된 위험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대표적으로 제2형 당뇨병은 염증 반응으로 인해 인슐린의 작용이 떨어지는 ‘인슐린 저항성’ 상태가 심화되며 발생합니다. 혈당 조절 기능이 무너지면 대사 전반에 문제가 생기고, 체내 지방 축적 또한 증가합니다.
염증은 심혈관 질환의 주요한 유발 요인이기도 합니다. 염증으로 인해 혈관 내벽에 손상이 생기면, 혈소판이 들러붙어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염증과 뇌질환의 연관성도 집중 조명되고 있습니다. 뇌 속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뉴런 손상과 함께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경로 중 하나로 알려졌습니다.
더 나아가 암과 만성 염증의 관계도 많은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염증 반응은 세포 분열을 촉진하고, 유전자 손상 복구를 방해하며, 암세포가 성장하고 전이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합니다. 특히 간암, 대장암, 위암 등은 만성 염증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만성 염증을 줄이기 위한 생활 속 실천 방법
다행히 만성 염증은 생활 습관만으로도 충분히 조절 가능하며, 질병 예방뿐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 첫걸음은 식단 관리입니다. 가공식품, 정제 탄수화물, 트랜스지방, 설탕 음료는 피하고, 채소, 견과류, 생선, 올리브유, 통곡물 등으로 구성된 항염 식단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규칙적인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도 필수입니다. 수면은 면역과 회복을 관장하는 중요한 시간이며, 수면 부족은 염증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명상, 요가, 심호흡, 산책 같은 활동은 만성 스트레스를 줄이고 코르티솔 수치를 안정시켜 염증 완화에 효과적입니다.
마지막으로 가벼운 운동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하루 30분 정도의 빠른 걷기나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은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염증 지표(CRP, IL-6 등)를 감소시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특히 꾸준한 운동은 체중 감량에도 효과가 있어 염증을 유발하는 지방세포를 줄이는 데도 기여합니다.
결론
그동안 염증이라는 것이 안 좋은 것이고, 위험한 것인지는 알았지만 대부분이 알고 있었던 몸의 염증이라는 것은 급성 염증이었다는 것과 우리 몸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만성 염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항상성의 원리로 항상 건강을 회복하려는 방향으로 반응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작은 습관으로 몸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만성 염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진행되지만, 지금 시작하는 작은 변화가 훗날 큰 질병을 막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